화폐전쟁화폐전쟁10점





자고로 책은 제목을 잘 지어야 한다. '로스차일드가의 음모'라든가, '금융계의 보이지 않는 손'이었다면 두꺼운 경제서적을 애써 한달 넘게 기다려 손에 잡지는 않았을 것이다.「화폐전쟁」은 식상하지 않고, 짧고 명확해서 단번에 관심을 끌었다.

선입관을 가지고 기대한 것은 금융지식을 주로 전달하며 과거,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화폐의 흐름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는 순간 차라리 소설이길 바랐다.

 "너희 형제들이 단결하기만 하면 세상의 어떤 은행도 너희와 경쟁이 안되며, 너희를 해치거나 너희로부터 이익을 취할 수도 없을 것이다. 너희가 함께 있으면 세상의 어떤 은행보다 큰 위력을 거머쥐게 될 것이다."
- 데이비슨이 네이선에게 보낸 편지에서, 1814년 6월 24일
- 1권 48쪽 -


로스차일드은행을 세운 1대 마이어 암셀 로스차일드가 엄격히 내린 유언 이후 200년 동안, 로스차일드는 위의 말대로 형제들이 똘똘 뭉쳐 보이지 않게 세계 경제를 조정하고 있다고 한다.

초기에 독일을 본점으로 다섯 형제가 유럽 주요 도시에 각 지점을 개설, 유능한 정보원들이 수집한 가장 비밀스럽고 빠른 정보를 통한 거래로 거대 부(富)를 형성하던 로스차일드가는 1980년대부터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도 활약 중이다.

로스차일드가의 가장 무서운 점은 국가의 화폐발행권을 장악한 데서부터 시작한다. 국가가 은행에 갚지도 못할 만큼 큰 빚을 지게 만들어 자신들의 부를 늘려 줄 권력은 손에 쥐게 된다. 이익를 위해서라면 국민이든 대통령이든 걸림돌이 되는 것은 제거하며, 긴 기간이라도 치밀한 계획을 세우며 세계전쟁이라도 일으킨다. 미국의 일곱 대통령 피살, 1차·2차 세계대전, 미국 남북전쟁, 세계경제공황, IMF 위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등등 지구상의 굵직굵직한 경제위기들이 이들 로스 차일드가의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라니 얼마나 끔찍한가.
 
위기를 일으킨 뒤 IMF, IBRD 등을 통해 내미는 구제의 손길은 한 나라의 주요 경제 자원을 소유하기 위한 은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라니, 강한 민족정신을 발휘해 금모으기 운동 등을 펼치며 IMF 위기를 극복한 우리나라가 대견하기까지 하다.
 
 "국제 금융재벌의 눈에는 전쟁도 평화도 없으며 구호와 선언도, 희생과 영예도 없다.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미혹시키는 것들을 철저히 무시했다."
- 프레더릭 머튼

국제 금융재벌의 본질을 꿰뚫어본 나폴레옹도 신랄한 평가를 했다.
 "돈에는 조국이 없다. 금융재벌은 무엇이 애국이고 고상함인지 따지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이익을 얻는 것이다."
- 1권 216쪽 -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는 다소 냉소적인 작가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음모론의 진실 유무를 의심하기 전에 사실로 믿어버리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는 중국인이어서 그런지 금융재벌들의 음모에 대처하기 위해, 중국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점검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구체적 방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작가의 능력 덕분인지 어려운 경제 지식을 몰라도, 금본위제의 중요성, 양털깎기, 증권·환율 시장에서의 현상들, 미국 부동산 모기지 위기 등도 이해하며, 화폐를 주제로 한 금융의 큰 흐름을 이야기 듣는 것처럼 읽을 수 있었다.

끝으로, 최근에 로스차일드가의 환경운동가가 플라스틱병으로 만든 배로 미국에서 호주까지 항해한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책에서는 지구 온난화 공포마저 그들의 돈벌이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음모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환경운동가의 환한 미소를 다시 보게 되는 이 마음이 서글퍼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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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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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작은 연못 가운데 초라한 정자였으나 수많은 크고 웅장한 전각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넓은 궁궐의 모든 건축물들과 풍경을 모두 거느린 듯했다. - 이정명 '뿌리깊은 나무' 2권 188쪽 (경복궁 향원지 취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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