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벽>


햇살이 밝아 불투명 유리창이 환하다.
창문을 열어 그 빛을 직접 보고 싶었다.


우리집 창문을 열면 벽돌 그림이 있다.
이웃집 벽이다.
봄 햇빛은 벽돌벽까지 환하게 비춘다.

이웃집 건물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경치가 제법 좋은 곳이었다. 오래된 단독 주택 마당에는 능소화가 타고 올라가는 키 큰 목련나무가 있었다. 이맘때에 목련꽃이 환하게 폈었다. *올해에는 평년보다 봄꽃이 일찍 피었다고 하니.
창문을 열고 멋들어진 목련을 해마다 내려다 보았다.

이웃집은 지은 지 삼십 년은 넘은 듯 했고 2층에도 마당같은 공간이 있었다. 한 해에는 중년 부부가 고기를 구워 먹어서 그  냄새가 나를 침흘리게 했다.
간편하게 설치하는 수영장이 놓인 적도 있었다. 어린애들이 물장구치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젊은 아버지가 물을 채우는지 빼는지 하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아이들 이동수단도 보였다.

우리집 창문을 열면 시야가 틔여서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그러다 어느 해에 이웃집은 마당이 파헤쳐지고 목련나무가 뽑혔다. 뚝 딱 뚝 딱 망치소리, 탁 탁 탁 탁 펀치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빌라가 들어섰다.
하늘이 창문 귀퉁이로 손바닥만큼 보이고 시원한 바람은 자취를 감췄다. 보이는 것은 벽이지만 그 사선으로, 윗쪽으로 창문들이 있어서 이제 이쪽 창문을 열어 두기도 꺼림칙하다.

이웃집 벽이 드물게는 벽돌을 그린 그림이라는 생각도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실 부정, 애써 하는 긍정적인 단념이다. 시원한 파란 하늘과 봄에는 흰 꽃, 여름에는 푸른 잎, 겨울에는 가지 뿐인 제 몸을 다 보여주는 나무가 보이던 풍경에 어찌 미칠 수 있을까.(책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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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작은 연못 가운데 초라한 정자였으나 수많은 크고 웅장한 전각들을 거느리고 있었으며 넓은 궁궐의 모든 건축물들과 풍경을 모두 거느린 듯했다. - 이정명 '뿌리깊은 나무' 2권 188쪽 (경복궁 향원지 취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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